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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유용정보

한국 성막 모형의 탄생

by 공식정보 2022.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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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성막 모형은 갈보리 선교교회가 제작한 5분의 1크기의 성막입니다. 현재 곤지암에 있는 갈보리 성막 수양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내가 한국 처음으로 성막 모형을 만들어 발표한 것이 1990년 12월이었습니다. 나 자신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성막을 처음으로 보고 성막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받았습니다.

성막을 5분의 1로 축소하여 만들면서도 내가 쓸 데 없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성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성막이 7분의 1이고, 유명한 스위스 성막이 25분의 1인 것에 비하면 큰 성막 모형입니다.

그러나 미국 란카스타 성막, <이스라엘의 친구들>이란 유대인 선교 단체가 만든 성경 크기의 성막에 비하면 작은 모형입니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시도라는 면에서 많은분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1989. 4. 19.

나는 미국 필라델피아 성막에 가서 간단한 성막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 때 제르(Zehr) 박사가 만든 성막을 처음으로 눈으로 보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때 나는 성막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라는 영감을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이제 보니 다른 나라 성막에 비하여 너무 초라한 성막이었지만 성막을 처음 대하는저는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그 날 밤 경건운동의 뿌리인 아미쉬(Amish)사람들중에 한 분인 쉔크(S. Shenk) 씨댁에서 하루 밤을 지내면서 한국에도 성막을 만들 수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찼습니다.

1990. 7. 6.

귀국후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재정도 넉넉하고 성막도 아는 목사님을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한국에서도 성막 모델이 만들어져서 성막속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

성경이 읽는 복음이라면 성막은 보는 복음이니 꼭 만들어지게 하옵소서 !그 귀중한 신약의 예수 피는 성막의 짐승 피부터 출발하여야 함을 성막으로 보여 주게 하옵소서! 신약의 십자가를 성막의 번제단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죽음과 성막의 죽음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하게 하옵소서 !

성막으로 성경을 말한다

이를 위하여 성막 실제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이를 보내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리는 데 하나님께서 번개같이 주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강 문호야! 네가 해라!>나는 이사야처럼 두렵고 떨렸습니다.

<하나님! 두번째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나는 성막 모델을 만들기 위한 연구에 전력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 엄청난 물질도 우리 교회가 댈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옵소서!>

<네가 적임자다. 네가 해라. 생각이 시작이다. 영감이 출발이다. 시작이 반이다. 시작하면 내가 함께 하마!>정리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를 구성하였습니다.

주시는 영감을

하여 본 교회에서 성막 건축위원회 모든 성도들이 잘 따라 주었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성막을 모를 때 성막을 시작하였습니다. 한 집사님의 격려가 고맙기만 하였습니다.

<목사님!

우리는 성막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언제 목사님께서 성막강의를 하여 주셨습니까? 그러나 목사님께서 만드신다고 하니 좋은 것이겠지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하여 헌금하겠습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1990. 7. 11. 모두가 한국에 성막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표였습니다.

제일 문제가 성막을 덮는 물개가죽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약 300마리 정도가 필요하였는 데 한국에서는 한 마리에 70만원 가량되었습니다. 그러면 모두 2억원이 필요하였습니다. 돈도 문제였지만 300마리는 한국에서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기도하라는 신호였습니다

물개가죽을 달라고 하나님께 졸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나를 밴쿠버 순복음 교회 부흥회 초청을 받게 하셨습니다. 한 문수 목사님과 밴프 여행을 하던 중 한 승기 집사를 시켜서 물개를 잡게 하였습니다. 마침 물개가 많이 나타나서 배핀섬은 온통 난리였습니다. 물개들이 바닷속에 있는 물고기들을 모두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나다 정부는 8월1일 부터 9월 30일까지 두 달 동안 물개헌팅시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7월 11일 물개가죽 300마리를 잡아 주기로 계약을 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8명의 물개 사냥군이 3시간가량 씨름을 하여 한 마리를 잡는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800명의 물개 사냥군을 고용하여 물개를 잡았습니다.


제1편 성막 서론

19

1990. 9.

중국 단동에 있는 압록강 호텔 614호 실은 <성막> 교과서 탈고의 방이 되었습니다. 강 건너 신의주가 내려다 보였습니다. 이북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땅끝임을 알고 기도하면서 전화나 사람들의 방해없이 성막 책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1991. 8. 11.

필리핀에 선교하러 나갔다가 들어온 최 강환 목사가 본 교회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는 한국 전통가구 기능 보유자로 가구나 조각에 전문가인 목사님이었습니다. 내가 각국에서 가지고 온 자료들을 모아 연구하면서 성막을 5분의 1로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자료는 성경이었습니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찾았습니다. 외국의 성막들도 정확하게 풀지 못 하고 적당히 넘어갔음도 알았습니다.

1991. 4. 14.

드디어 물개가죽이 김포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물개가죽을 찾으러 갔을 때서야 비로서 수입금지품을 수입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국법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세관 당국에서 내주지 않았습니다.

대책을 물었습니다.

<불태우거나 돌려 보내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택일하십시요>

우리는 대답하였습니다.

<우리가 둘 중에 선택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한국의 성막 모델 재건을 위해 꼭 주셔야 합니다)

타협이 될 리가 없습니다. 공무원인 관리들은 원칙만 주장하였고 우리는 찾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헛수고를 하고 돌아 왔습니다.

얼마 후 연락이 왔습니다. <이 물건은 팔지 않을 것이지요?>

<물개가죽이 냄새가 나고 다른 보관물에 지장을 주어 불태워 버릴 터이니 입회하십시요>

우리는 가서 또 떼를 쓰며 말려야 했습니다.

이런 일을 수없이 겪으며 지냈습니다. 어느 덧 세 달이 지났습니다. 7월 26일 세관에서 들어 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투쟁아닌 투쟁을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의외에도 책임자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에 성막 모델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 성막으로 성경을 말한다.

<비영리 물건이지요?>

<그렇습니다><그러면 다시는 수입하지 않겠다고 여기에 싸인을 하십시요. 그러면 내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약 100일 간의 창고비를 지불하고 물개가죽은 우리 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자기들이 억류하고 그 비싼 창고비를 지불하는 것이 억울하였지만 순순히 준 것만도하나님의 은혜로 돌렸습니다.

물개가죽이 도착된 후 한 집사님이 말했습니다.목사님! 정말 300마리 수에 차질이 없는 지 세어보겠습니다>한 장 두 장 세어 보니 모두 303마리였습니다. 집사님이 말했습니다.<목사님! 300마리를 주문하였는데 303 마리가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무슨 뜻일까요?>

<이 세 마리로 목사님 코트 한 벌 하여 입으라는 것입니다>나는 웃으면서 그의 호의를 감사로 받아 드렸습니다. 그러나 물론 코트를 만들어 입지는 않았습니다.

1991. 11. 21.

이제 성막 모델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책도 출판이 되었습니다. 제1기성막 쎄미나를 본 교회에서 열었습니다. 130명의 목사님이 참석하였습니다. 성막 모델도 아직 미완성이었고, 강의도 어설펐지만 그런 대로 자신감을 준 쎄미나였습니다.

1991. 12. 29

드디어 성막 모델 봉헌예배를 드렸습니다.

곽 전태 감독, 나 원용감독, 김 우영 목사님이 오셔서 순서를 맡아 주셨습니다. 감독회장 곽 목사님은 히브리서 9장1절 7절까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속죄의 의식>이라는제목으로 성막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주셨습니다.

기독교 신문사들과 잡지사들과 방송국들이 일제히 보도하였습니다.왜 기독교 시대에 유대교로 돌아가게 하는가?

그 후 나는 17 신문사 기자들과 대담으로 두 주간을 지내야 했습니다. 모두가 긍정적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그러나 유독 한 신문사가 나를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왜 강 문호 목사는 복음 시대에 율법을 들추어 내는가?

왜 예수 피 시대에 짐승 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는가?왜 신약시대에 구약을 강조하는가?

교회도 못 짓고 2층 건물에서 예배드리는 교회들이 많은 데 그런 쓸 데 없는 것에돈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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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성막 서론

감리교 감독이라는 사람들은 그렇게 판단력이 없는가? 그런 곳에 가서 설교하고 축사나 축도를 할 정도로 무분별한가? 오라면 다 가는가?>

1994. 12. 17우리 교회는 대망의 성막 수양관을 짓기 위하여 기공예배를 드렸습니다. 곤지암 절터를 구입하여 성막 수양관을 기공하였습니다. 본 교회가 숙박시설이 없어서 성막 공부를 하기에는 몹시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 교회에서 T7기까지 성막 공부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1996. 2. 5.

이 해 겨울중에 최고의 폭설이 내린 날이었습니다. 오후 2시 수양관 봉헌 예배를 드리려 하였으나 집례를 맡은 김 선도 감독 회장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늦었습니다. 폭설로 인한 교통 마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봉헌을 하기 전에 78기로 어려운 개척교회 목사님들 150명을 모시고 무료 목회자 성막 쎄미나를 열었습니다.

1996. 8. 25.롯데 월드 어드벤쳐를 만든 팀들을 동원하여 인형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인형제작으로 번제 예식을 재현시켰습니다.

1996. 10. 20. 법궤, 등대, 분향단 그리고 떡상이 실물크기로 재현되었습니다. 법궤는 논산 제일교회 이 종영권사님이 400만원을 헌금하여 제작되었습니다. 등대는 대전 문영의 모사관님이 400만원을 헌금하여 제작되었습니다. 분향단과 떡상은 모교회 모전도사님이 헌금하여 제작되었습니다.

1997. 12. 31

제106기 성막 쎄미나를 마쳤습니다. 지금까지 19,496명이 공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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