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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유용정보

죽고싶으나 죽을수 없는 화

by 공식정보 2022.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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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화! 화! 3번 화가 나오고 있습니다.

1. 죽고 싶으나 죽을 수 없는 화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계 9:6)

2. 성전 밖 마당만 밟은 자에 임하는 화

<또 내게 지팡이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지들을 척량하되 성전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 즉 저희가 게룩한 성을 마흔 두달동안 짓밟으리라> (계 11:1~2)

3. 불신자에게 오는 화

〈죽음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 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 찌어다 (계 13:8~9)

이들은 다 울타리 밖에 있어서 구원받지 못 한 자들입니다. 울타리안만이 안전합니다.

(3) 소유

울타리는 소유를 의미합니다. 울타리 친 안은 주인 것입니다. 주인은 자기 땅에 울타리를 두르게 됩니다. 주인의 것과 주인의 것이 아닌 것의 경계가 바로 울타리입니다. 그러므로 울타리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밖에 있으면 마귀의 식구입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다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3)

<내가 너를 구속했다>는 말은 성막안의 번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울타리안은 모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4) 공급 울타리안에서 하나님의 모두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안에 있는 이는 연결되어 있는 이요 연결되어 있는 이는 공급을 받을 수 있는 이입니다. 말씀이 공급됩니다. 빛이 공급됩니다. 복이 공급됩니다. 울타리 안에 있는 이에게는 무엇보다도 성경이 공급됩니다. 구름 우산으로 시원함이 공급되고, 불 우산으로 밤에는 따뜻함이 공급됩니다. 울타리안은 공급을 의미합니다.

61성막으로 성경을 말한다.

(5) 구별

울타리안과 밖은 양과 염소의 구별입니다. 생명과 죽음의 구별입니다. 복과 죄의 구별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구별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골을 얻으리라 (요 10:7~9)

장소를 거룩하게 구별하면 성소입니다.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면 성일입니다. 물건을 거룩하게 구별하면 성물입니다. 사람을 거룩하게 구별하면 성도입니다. 울타리안은 울타리 밖과 무엇이나 구별됩니다. 이같이 울타리는 보호요, 안전이요, 소유요, 공급이요, 구별을 의미합니다.

62. 제2편 성막 뜰

제2장 성막문

출 27:13-16)

141515 동을 향하여 뜰 동편의 광도 오십 규빗이 될지며 4문 이편을 위하여 포장이 십 오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요 5문 저편을 위하여도 포장이 십오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 침이 셋이며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 짠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 이며 (출 27:13~16)16

모세가 말한 것은 모두 예수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요5;46)수건을 벗고 보면 구약성경은 모두 예수님입니다(고후3:12-18)성막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라)(요 10:7)

자! 이제부터 문으로 들어가며 문의 특징을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1. 오직 하나의 문

성막 사방에는 12지파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한 쪽에 3지파씩입니다. 그러므로 한쪽에 문 하나씩 내면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 그러나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 성소에 들어가는 데는 오직 한문으로 밖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로만 구원이 가능합니다.

다른 이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 4:12)

200만명이 사용하는 하나님의 집에 문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성소가 아무리 좋아도 문이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성격을 7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나는 선한 목자다. (2) 나는 생명의 떡이다. (3) 나는 빛이다.

63성막으로 성경을 말한다.

(4) 나는 길이다. (5) 나는 진리이다. (6) 나는 생명이다. (7) 나는 문이다.

2. 큰 문

오직 하나의 문은 작은 문이 아니라, 큰 문입니다. 동쪽 25M(50규빗)중에 10M(20규빗)가 문입니다. 우리는 좀체로 10M나 되는 통문을 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구라는 고기가 앞에서 보면 입만 있는 것처럼 성막의 동쪽은 거의가 문입니다. 누구든지 들어오라고 그렇게 큰 문을 만드신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는 감격스럽습니다.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아니 누구든지 들어와야 합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예루살렘 사람도 들어 와야 합니다. 온 유다 사람도 들어 와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도 들어 와야 합니다. 땅끝까지의 사람들도 들어 와야 합니다. 여기에 선교의 당위성이 있습니다. 다 들어와야 하기에 모두에게 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 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3. 동쪽 문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지을 때에는 반드시 동쪽으로 문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에도 동쪽으로 문을 내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쪽으로 문을 내면 어떤 결과가 오는 것일까요?

들어 올 때에는 서쪽을 보고 들어 오게 됩니다. 그리고 나갈 때에는 동쪽을 보고 나가게 됩니다.

서쪽의 첫 인상은 해지는 곳, 어두운 곳, 쓸쓸한 곳, 음산한 곳입니다. 그러나 동쪽의 첫 인상은 해뜨는 곳입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광명한 햇살이 비취는 곳입니다. 마귀의 세력이 떠나고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는 밝은 곳입니다. 기독교는 소망의 교입니다. 축복의 길입니다. 더구나 문 앞에는 유다지파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메시야 주님은

64제2편 성막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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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지파를 통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 하시기를 실로에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 49:10)

동쪽문은 유다지파가 위치한 문에다 소망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두가 들어있기에 동쪽문은 소망입니다. 성막은 죄를 가지고 들어 왔다가 죄를 버리고 나가는 곳입니다. 성막은 기도를 가지고 들어왔다가 응답을 가지고 나가는 곳입니다. 성막은 병을 가지고 왔다가 건강을 가지고 나가는 곳입니다. 성막은 문제를 가지고 왔다가 해결을 가지고 나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막은 서쪽보고 들어왔다가 동쪽보고 나가도록 동을 향하여 문을 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성도가 이사하여 다닐 교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이 주변에 좋은 교회가 있으면 소개하여 주십시요>교통경찰은 한 교회를 가르키며 말했습니다. <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 다니십니까?>

<안 다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아십니까?>서쪽으로 들어 왔던 교인들이 동쪽으로 나가게 하는 곳이 바로 교회이어야 합니다. 홀메스와 라헤(Holmes & Rahe)는 스트레스 수치를 계산한 이입니다.

<예. 내가 이 곳에서 19년 째 교통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에 보면 제교회 교인들은 예배를 마치고 웃으면서 나옵니다>

배우자의 사망을 100으로 하였습니다. 이혼 73, 징역 63, 질병과 부상 53, 은퇴 43, 성문제 39, 직업전환 36, 상사와 알력 23, 임신 30, 이사하려면 20, 성탄절이면 이유없이 20등 모든 스트레스를 수치화시켰습니다. 그래서 200이 넘으면 병들기 시작하여 300이 넘으면 미치기 시작한다는 것이니다.

예를 들면 성탄절(20)인 데 이사(20)하여야 하는 데 병(53)들었는 데 임신(30)한 여인이 남편을 잃었(100)습니다. 그러면 그 여자는 223만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당장 심한 중병을 앓게 됩니다. 이런 여인이 교회에 올 때는 서쪽으로 들어 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믿음과 확신과 소망이 넘쳐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집으로 돌아가야 서쪽으로 들어와서 동쪽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배를 드리는 도중이나 목사 설교를 듣고 스트레스를 얹어서 오히려 223만한 스트레스가 250쯤으로 증가하여 집으로 돌아간다면 서쪽으로 들어왔다가 북쪽으로 나가는 격이 됩니다.◆ 성막으로 성경을 말한다.

이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4. 4색의 문

성막문은 청색, 자색, 홍색, 가는 베실로 짜여 있습니다.그래서 청색은 생명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구원의 문입니다.

청색은 생명의 색깔입니다. 진정한 하늘 색은 청색이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자색은 왕권을 의미하는 색깔이기 때문에 <왕 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홍색은피색깔입니다. 그래서 <고난 당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백색은 성결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는 베실은 백색인데 이는 <성결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나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요? 가이샤라 빌립보에서의 여론 조사에서는 참으로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마16:13~20)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나 선지자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 16:14

그러나 이는 잘못 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떤 분이십니까? 성막문으로 대답하면 아주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성막문이 바로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우리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셔서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100점짜리 대답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0:9)

<광야의 성막> 저자 죤 리치는 이렇게 4가지 색깔을 해석하고 있습니다.청색은 하늘의 고유색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예수님의 본질인 생명입니다.

홍색은 땅의 고유색깔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인성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고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자색은 하늘색깔인 청색과 땅의 색깔인 홍색을 섞은 색깔입니다. 따라서 지상에서

영광인 왕권을 의미합니다.베실은 순결을 의미합니다. 이 네 가지 색은 예수님의 특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66제2편 성막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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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턱이 없는 문

이 문에는 문턱이 없습니다. 누구나 들어 갈 수 있으며 누구나 들어 가기가 쉽습니다.

예수 믿기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영접하면 됩니다.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

진(秦)나라가 주변에 있는 6개국을 통일하였습니다. 이 때 공을 세운 이가 바로 효공입니다. 효공을 도와 나라를 부강하게 한 이가 상앙(商映)이었습니다. 상앙은 백성들에게 신뢰를 받아야 정치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한 가지 묘책을 찾았습니다. 그는 남쪽 문 옆에 석자 남짓한 나무를 일부러 심었습니다. 그리고 방을 써붙였습니다.

<누구든지 이 나무를 북문 앞에 옮겨 심는 자는 10금(황금 10근)을 준다>

그러나 사람들은 웃기만 하면서 나무를 옮겨 심지 않았습니다. 상앙은 상금을 50금으로 올려 다시 방을 붙였습니다. 이렇게 쉬운 일을 그렇게 거금을 준다니까 비웃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지나던 한 사람이 장난삼아 나무를 옮겨 심었습니다. 상앙은 정말 그에게 금 50근을 주었습니다.

이 소문이 전국에 퍼졌습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상앙이 어떤 말을 하여도 믿게 되었습니다.

성막 문은 턱이 없습니다. 구원받기란 너무나 쉬운 것입니다. 춘향전에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변사또가 춘향이에게 수청들라고 하여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난장을 치고 주리를 틀어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변사또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년의 닫힌 문이 나무문이면 목수를 불러 부수고, 쇠문이면 대장장이를 불러 부수고, 돌문이면 석수를 불러 부수어라>

열리기 힘든 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막문은 열기 쉽고 들어가기 쉬운 문입니다.성막으로 성경을 말한다.

제3장 번제단

〈출 27:1-8)

3'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쌀지며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놓으로 만들지며 4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모퉁이에 고리 넷을 만들고 '그물은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곧 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또 그 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단 양편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단을 메게 할지며 단은 널판으로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출 27:1~8) 5

문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곳이 번제단입니다. 이제부터 번제단에 대하여 공부하려고 합니다.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약도입니다.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문부터 출발합니다. 문에서 예수를 믿은이는 번제단에서 죄를 버려야 합니다. 예수믿고 죄를 버리지 않은 이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들은 문과 번제단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입니다.

어떻게 죄를 버립니까? 지금은 예수 피에 의지하여 회개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흠없는 짐승을 끌고 와서 안수하여 죄를 전가시킨 후에 번제단에 불태움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 번제단의 뜻

단은 <미쯔하바>라고 합니다. 이는 동물을 학살하다, 죽이다의 뜻입니다. 번제는 <오라>란 말로 올라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번제단은 <동물을 죽여 올라간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사람이 긴급한 문제로 왕을 만나고 싶어 궁궐앞에서 들어가려고 애썼지만 관리가 못 들어가게 막았습니다. 이때 어린아이 하나가 <왕을 만나고 싶어요?물었습니다. <네가 왕을 만나게 할 수 있니?> 비웃으며 물었습니다. 따라 오세요> 하며 어린아이가 앞장섰습니다. 알고 보니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때문에 왕을 만나 듯이 번제단의 피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는 유일한 문으로 들어가 피로 죄를 닦는 번제단을 통하여 하나 하나 가까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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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성막 뜰

2. 번제단의 재료

조각목을 놋으로 싸서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조각목은 버림받은 인간을 뜻합니다.

놋은 물론 십자가의 상징입니다. 성경에서놋은 저주와 승리 두 가지를 의미하여 주고있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저주와 승리가 같이 복합되어있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저주받은 곳이고 승리하신 곳입니다.

먼저 놋이 저주를 상징하는 곳을 보십시다.

〈 번제단 위의 희생 제물〉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상한과 학질과 한재와풍재썩은 재앙으로 너를 치리니… 네 머리위의하늘은 놋이 되고… 여호와께서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시리라> (신 28:22~24)

하늘이 놋으로 막히는 것만큼 저주가 어디 있겠습니까?이사야도 놋을 저주의 상징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 하며(사 60:17)

그러나 놋은 승리로 상징되기도 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묘사할 때에 발이 주석같다고 하였습니다. 주석은 놋을 말합니다.

그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된 주석과 같고> (계 1:15)

열왕기상 4:13에 등장하는 놋빗장은 아무도 꺽을 수 없는 승리의 강인한 힘을 의미하여 주고 있습니다.

또 바산 아르곱 땅의 성벽과 빗장이 있는 큰 성 육십을 주관하였으며 (왕상 4:13)

사무엘상 17:5-6을 보면 군인들의 갑옷과 투구는 놋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승리를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의명령에 따라서 놋뱀을 만들어 달았습니다. 이것을 보는 이는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그러나 의심하고 보지 않는 이들은 죽었습니다.

놋뱀이 매달린 것은 저주요 쳐다보고 고침을 받은 것은 승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저주와 승리가 복합되어 있는 곳입니다.성막으로 성경을 말한다.

버림받은 조각목같은 인간은 십자가가 아니면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막 쎄미나를 하면서 번제단 공부를 할 때마다 많은 분들이 내게 물었습니다.<목사님!조각목을 놋으로 싸고 계속 불을 태우면 조각목이 타없어지지 않습니까?>이런 문제를 안고 영국 소방소 당국에서 실제로 실험하여 보았습니다.금이 불에 녹는 온도는 섭씨 1069도이고 놋이 녹는 온도는 1085도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금보다 놋이 불에 강하였습니다. 실제로 조각목을 놋으로 싸서 불속에 넣어보았습니다. 결과는 조금도 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였습니다. 밀폐된 속에 있는 나무는 타지 않았습니다. 산소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뜨거워도 산소가 없으면 연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으로 싼 조각목은 결코 타지 않습니다. 십자가로 싸여진 사람은 결코 멸망당하지않습니다.

미국 사람이 브라질에서 사형당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대사가 간청해도 죽여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사는 그 사형수에게 미국 국기를 씌웠습니다. <죽일테면 죽이라>외쳤습니다. 차마 미국 국기를 쏠 수가 없었습니다. 국교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미국국기로 씌웠기에 살았습니다. 버림받은 인간도 십자가로 싸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번제단은 구원의 장소입니다.

3. 번제단의 크기

가로 세로 각각 2. 5m(5규빗), 높이가 1. 5m(3규빗)입니다.

성경에서 5는 고통의 숫자입니다. 온갖 병신들이 모이는 솔로몬 행각은 5기둥입니다.수가성 여인은 남편이 다섯 남편이 있었습니다. 번제단의 가로도 5규빗 세로도 5규빗입니다. 죄와 이혼식을 거행한다는 것은 고통의 경험입니다. 짐승이 학살되어 타는 것은 고통의 모습입니다. 예수의 피는 고통의 절정입니다.

3은 하나님 숫자입니다. 성 삼위일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인간은 자기죄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간때문에 같이 고통 당하는 자리가 바로번제단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스런 인간때문에 그의 외아들 예수를 십자가에서 처절할정도로 잔인하게 죽여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번제단은 죄사함받는 자리, 죄 버리는 쓰레기장, 마귀와 이혼하는 자리입니다. 이곳을 통과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번제단은 성막의 성물중에 가장 큰 성물입니다.

죄사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려 주는 상징입니다.

70제2편 성막 뜰

4. 번제단의 특징

번제단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번제단과 일치합니다.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건물이 있지만 사람의 죄를 사하고 구원을 주는 곳은 오직 십자가가 있는 교회뿐입니다.

아무리 목욕탕에 들어가서 때를 열심히 닦아도 죄만은 닦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학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여도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병원에서 수술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죄를 수술하여 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번제단에서 죄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번제단입니다.

그런데 번제단은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 3가지 특징이 바로 교회의 3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1) 피

번제단의 첫 특징은 피입니다.

번제단 옆에서 잡은 제물의 피는 번제단 사면에 뿌려지게 됩니다. 번제단은 소 한마리 잡아 놓으면 꽉 차는 작은 곳입니다. 그런 작은 곳 사면에 피를 계속 뿌렸습니다. 그래서 번제단의 특징은 피입니다.

피가 없는 번제단은 번제단이 아닙니다. 제사가 없는 번제단, 제물이 죽지 않는 번제단, 죄인이 오지 않는 번제단은 이미 번제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뿌리는 번제단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특징은 피입니다. 예수 피가 무시된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건물이 없어도, 피아노가 낡았어도 그리스도의 피만 있으면 그 곳이 바로 교회가 됩니다.

(2) 불

번제단의 두번째 특징은 불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는 돌단에서 성막으로, 성막에서 성전으로, 성전에서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돌단에는 항상 하나님의 불이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돌단을 쌓고 제물을 올려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횃불이 내려와서 지나다. 녔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창 15:17)

그리고 모세가 성막을 만들어 놓았을 때에 번제단에 하나님이 불을 주셨습니다.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하여 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 오니

71성막으로 성경을 말한다.

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 나와 단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며 엎드렸더다> (레 9:23~24)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놓고 첫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습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으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 하고 (대하 7:1~2)

교회가 시작될 때에도 불같은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이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1~4)

이같이 돌단의 시작은 불이었습니다. 성막의 시작도 불이었습니다. 성전의 시작도 불이었습니다. 교회의 시작도 불이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관의 시작은 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은 뜨거움입니다. 불꽃이 없는 불이 불이 아닌 것처럼 뜨거움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불을 주셨다는 것은 용서를 의미합니다.

동이 서에서 먼것 같이 동쪽의 번제단과 서쪽의 속죄소는 멀었습니다. 제물이 불에 타는 순간은 죄인이 의인되는 순간입니다.

나폴레옹을 태운 말이 갑자기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생명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한 병사가 목숨을 걸고 달려가 그 말을 진정시켰습니다. 나폴레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너는 장교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 병사는 장교석에 가서 앉았습니다. 한 대위가 <너는 사병이니 사병석으로 가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때 그는 <난 장교입니다>라고 소리질렀습니다. <누가 그러더냐?>물었습니다. <황제가 그랬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황제가 장교라고 말하는 데 누가 무어라고 말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녀로 인정해 주셨는데 누가 우리를 송사하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1 ~39)

72제2편 성막 뜰

73

죄 된 인간에게 하나님이 의롭다 여기시는 곳이 번제단이요, 그 증거가 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을 주시면서 번제단위의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레

6;8-13)밤에도 꺼뜨리면 안 됩니다. 제물이 없을 때도 꺼뜨리면 안 됩니다. 제물을 드리지 않는 안식일에도 꺼뜨리면 안 됩니다. 이 불은 폭우가 쏟아 져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 불은 강풍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미드라쉬는 이 불에 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강할 때에는 이 불이 사자처럼 강하여 소를 올려 놓아도 수 초만에 태워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약할 때에는 이 불이 개처럼 약하여 비둘기를 올려 놓아도 제대로 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불만 보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제2성전 시대에 일어났던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로마가 성전을 둘러 싸고 <성전 번제단에 불을 피우기 위하여 나무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보초를 길목에 세우고 성전안으로는 나무가 들어가지 못 하도록 엄격히 지켰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까지 가방속을 샅샅히 뒤졌습니다.

도저히 번제단으로 나무를 나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불을 꺼뜨리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불을 피우지 말라는 황제의 명령보다 강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번제단위에 불이 꺼지지 않은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몹시 두려워 하는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벌레가 먹지 않은 온전한 나무를 잘라서 사닥다리 옆에 감쪽같이 붙였습니다. 그리고 사닥다리를 메고 당당하게 들어갔습니다.

<멈취라! 그 사닥다리는 무엇이냐?> 보초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왔습니다. <우리 집 나무 위에 새 집을 놓으려는 것이요. 사닥다리 없이는 도저히 새 집을 놓을 수가 없소이다>

태연하게 말하는 유대인을 로마군인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간 그는 사닥다리 옆에 붙어 있는 나무를 떼어냈습니다. 그 후 번제단 불속에 넣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가문을 브나이 샬마이(Bnai Salmai)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사닥다리 가문(The Ladder Family)이라는 의미입니다. 번제단위에 불은 꺼지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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